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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계승전쟁/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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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색화약, 참호, 그리고 아껴 쓰는 총알 ===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 전쟁의 전투 기록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무연화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총 몇천 정이 일제히 불을 뿜으면 전장 중앙이 흰 연기로 뒤덮이고, 그 상태에서 200미터 앞이 안 보인다. 이게 왜 문제냐면, 당시 지휘 수단이 육성과 나팔과 군기뿐이기 때문이다. 연기 속에서 육성은 안 닿고 군기는 안 보인다. 대형이 한번 흐트러지면 재집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로엔필드 조우전]]에서 왕당파 종대가 갈라진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의회군이 신병 훈련 8주 중 상당 시간을 '''연기 속에서 옆 사람 안 놓치기'''에 쓴 이유가 여기 있다. 사격 자체는 며칠이면 배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참호 판 쪽이 이긴다''' 1877년 [[플레브나 공방]]에서 참호에 들어앉은 오스만군이 러시아군 정면 돌격을 세 번 격퇴한 이후, 유럽 군대는 야전 축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교훈이 방어 교리에만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공격은 여전히 정면 돌격이었다. 계승전쟁은 이 불균형이 그대로 터진 전쟁이다. 왕당파는 로마 시대 [[루이나 방벽]] 유적을 기초로 참호와 흉벽을 팠다. 남부 고지 출신 석공이 많아서 축성 질도 좋았다. 반면 의회군에게는 화력 집중 후 정면 공격 말고 선택지가 없었고, 그 결과가 [[테른 고개 전투]]의 사상자다. '''총알을 세면서 쏘는 군대''' 1884년 이후 왕당파는 '''사격 자체를 아껴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당시 방어 교리의 핵심은 접근하는 적에게 지속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것인데, 그럴 탄약이 없었다. 그래서 왕당파는 최후까지 참았다가 짧게 집중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테른 고개 전투]] 첫 나흘 동안 의회군이 예상보다 큰 손실을 낸 것도, 왕당파가 소총탄만은 마지막까지 아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병은 더 심했다. 1884년 1월 이후 왕당파 야포에는 '''1문당 하루 3발''' 제한이 걸렸고, 나중엔 2발이 되었다. 참고로 이 시대 야포는 주퇴복좌기가 없어서 쏠 때마다 포가 뒤로 밀린다. 밀린 포를 다시 밀어 넣고 재조준하면 실전 발사 속도는 분당 두 발이 한계다. 즉 왕당파 포병은 '''하루에 1분 반 정도 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공성은 결국 삽으로''' 돌파가 안 되니까 의회군은 옛날 방법으로 돌아갔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폭약을 터뜨리는 '''갱도 작업'''이 [[스톤게이트 관문 공방]]과 [[카엘몬트 성 공방]] 양쪽에서 쓰였고, 둘 다 정면 공격이 실패한 뒤에 채택되었다. 강선 공성포와 강철 후장포의 시대에 성벽을 무너뜨린 건 결국 삽과 폭약이었다는 얘기다. '''기병은 돌격하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기병 충격 돌격은 한 번도 성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도 자체가 거의 없었다.''' 후장식 소총 앞에서 밀집 기병이 달려드는 건 자살이라는 걸 양측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기병은 정찰과 습격에 쓰였고, 이건 꽤 잘 먹혔다. [[할브룩 습격]]이 대표적이다. 기병 2개 중대가 야간에 산길로 우회해서 왕당파 후방 보급 집적소를 태우고 돌아온 이 작전은, 병력 손실이 거의 없으면서 상대 보급에 결정적 타격을 줬다. '''기관포는 아직 실험 중''' 양측 다 기관포를 소량 갖고 있었지만 야전 주력은 아니었다. 손잡이를 돌려 격발하는 다총신 방식이라 무겁고 느렸고, 무엇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무도 몰랐다.''' 이 시기 유럽 각국도 마찬가지여서 대개 요새와 군함에 붙박이로 달아 두는 물건 취급이었다. 계승전쟁에서도 관문 방어와 고정 진지에 소수 배치된 게 전부다. 참고로 진짜 자동화기인 맥심 기관총은 이 전쟁이 한창이던 1884년에 발명되었고, 실전에 쓰이는 건 한참 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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